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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개혁안 발표 9.4.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연금개혁 정부안의 핵심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정부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9%, 40%에서 13%, 42%로 올리고 있다. 보험료율은 지금 납부하는 금액, 소득대체율은 연금으로 받을 금액을 의미한다. 소득의 9%만 내다가 나중에 40%를 받는다는 것은 (1) 내는 기간 대비 받는 기간이 짧거나 (2) 기금 수익률이 매우 높은 경우에만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1) 고령화로 인해 내는 기간 대비 받는 기간이 크게 길어졌고 (2) 기금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을 크게 넘어서기는 어렵다. 그래서 결론은 기금 고갈이다. 정부는 2056년이면 고갈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연금 기금을 장기적으로 정상 운영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을 낮추거나 혹은 둘 다 해야 한다. 이번의 정부안은 소득대체율을 9%에서 13%로 올린 반면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로 올리는 선택을 했다. 
 
 보험료율은 1998년부터 9%였는데, 이제 13%로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2007년 연금개혁으로 2028년까지 점진적으로 40%까지 낮추는 스케쥴(2024년 현재는 42%)을 따라가고 있는 와중에, 역으로 다시 올리는 선택을 했다. 정부는 소득대체율 40%에서 안정적으로 기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당장 25년부터 18~20%까지 올려야 한다고 보고서에 적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선택은 약소하다. 보험료율 인상은 13%에 그치고, 소득대체율은 42%로의 인상이다. 또한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3%로 즉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4년~16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올려서 2040년이 되어서야 모두가 13%를 내게 되는 구조이다. 이 경우 정부는 기금이 2072년에 고갈된다고 하는데, 이는 기금수익률을 4%에서 5%로 20%가량 올리겠다는 도전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가정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2060년대에 고갈될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권에서 논의는 계속되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초 민주당은 노후보장 강화에 방점을 찍고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3%를 제안했고, 국힘당은 기금안정에 초점을 두고 소득대체율 유지, 보험료율 12%를 제안했다. 이후 여야는 보험료율을 13%에 대해서 잠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소득대체율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었다. 24년 5월에는 한동훈이 소득대체율 44%를 제안했다가 이재명이 받아들이자, 국힘은 다시 엄밀히 44%를 제안한 건 아니라며 물러섰다. 그리고 정치권의 논의가 중단되었다. 이후 정부가 책임있는 자세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정부가 생각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안에 대해서는 여당인 국힘은 지지하고, 민주당은 소득대체율 42%가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청년의 표가 중요한 상황에서 연금 개혁의 기본 방향은 청년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든 국힘이든 자신이 책임지고 주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특정 당이 제안한 방안이 관철된다면 그 당은 커다란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된다. 보통 성공한 정책은 아주 먼 미래에나 평가를 받고 지금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반하기 마련이다. 24년 5월에 국힘 한동훈의 제안을 이재명이 받아들이자 국힘이 궁색한 변명까지 하면서 물러선 이유가 바로 이 정치적 책임에 대한 무게 때문이라 생각한다. 구조적으로 근시안적인 정치권이 장기적인 미래를 향해 책임성 있는 멋진 모습을 취할 걸 기대하는 게 현실적인 건 아니다. 그래서 정치권은 계속해서 정부가 제안해주길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정부가 정부안을 제안한 이상, 정부가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기가 힘들 것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혁신적인 제안을 했다가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국민연금과 관련해 주어진 질문은 "세대간 형평"이라 생각한다. 바로 “노인과 장년과 청년과 아이들, 그리고 태어날 아이들이 각자 얼마나 부담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이다. 이것은 보험료율과 직접 관련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연금제도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연금 지급금액, 즉 소득대체율은 연금 받는 것을 시작할 때 결정된다. 예를 들어 2007년 이전에 연금을 받기 시작한 사람은 소득대체율이 60%로 사망시까지 고정되어 있고, 지금의 연금개혁 논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고령화나 성장률 둔화 등 경제사회 변화가 연금기금에 악영향을 미칠 것임에도, 현재 연금수급자는 그 기금으로부터 기존 혜택을 그대로 누리기 때문에, 기금에 대한 악영향은 앞으로 보험료를 납부할 사람에게 전가되는 구조이다. 또 연금수급에 가까울수록 인상된 보험료를 납부하는 기간이 작아 유리하다. 즉, 어릴수록 불리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 불리하다. 
 
 어떤 연금개혁으로도 세대간 불형평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 세대별로 기금을 분리하는 방안이 제안된 적이 있다. 각자 납부한 저금통에서 각자 찾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세대간 불형평을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저금통이든 모자라게 될 것이고, 정부는 세금으로 이를 채우려 할 것이며, 그때 세금을 내는 주체는 미래세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금개혁 논의에서 세대간 불형평은 핵심 문제이며, 근본 해소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상기되고 정책에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안에서는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나이대별로 차등을 둠으로써 현재의 젊은 세대에 대한 불형평을 일부 완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세대간 갈등을 야기한다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나는 오히려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세대간 갈등을 억눌러 보아도 언젠가 터질 문제이기 때문에 그 갈등을 좋은 방향으로 공개적으로 관리해나가는 것이 정치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연금개혁 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직 세상에 없어서 목소리가 전달될 수 없는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험료율 13% 결정 및 추가 논의가 부재한 것이 고민 부족을 전면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정부안에 따라 보험료율 13%로 연금개혁을 한 후에도 2070년에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정부 공식 보고서에서 적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대로 논의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기금이 고갈될 거구나~ 하고 무감하게 지나가면 되는 건가? 기금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2040~2050년 시점에 사회에 진출하는 아이들은 이제 세상에 태어나기 시작했다. 정부와 정치 엘리트들이 모두 50대 이상이어서 그때쯤에는 본인들이 있을 세상이 아니어서 이렇게 쉽게 적고 말 수 있는 것 아닐까? 기금 감소 시점부터는 보험료율을 아무리 끌어올려도 기금 안정성이 회복이 안될 것이다. 그럼 그때 성인이 되는 2020~2030년대생들은 어떤 혼란과 부담을 마주하게 될까? 청년과 노인들과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청년이 소득의 50%를 부담하는 것으로 굴복하거나 전례없이 노인의 수급금액을 감소시켜버리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이렇게 상상할 수 없는 미래가 올거라고 담백하게 제시해 놓고, 거기서 논의를 그만두고 있다. 정부 보고서는 해외사례를 들어 보험료율을 20%수준이 되어야 함을 암시하면서도 ”국민적 수용성“을 고려하여 13% 수준에서 결정했다고 하고 있다.
 
불편하지만 이게 현실이긴 하다. 국민이 20% 수준의 보험료율을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또다른 본질적인 문제다. 국가가 뭘 해준다고? 라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목소리도 거기까지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멋진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권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암담하다. 보험료율 20%를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물러서더라도 그 과정을 역사에 남기는 정당의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것이야말로 정치권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1998년 이후로 26년만에 보험료율 인상 시도이고, 또 언제가 될지 모른다. 좀 더 사명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연금개혁 정부안은 현재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탄소중립법과 비슷하다. 탄소중립법은 며칠 전에 탄소배출 저감 노력이 부족해 미래세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이 났다. 이와 유사하게, 현재 연금개혁 정부안도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하다는 사실 인식이 국민에게 공유되어야 하고, 정치권이 못하면 헌법재판소라도 위헌 판결로 사회에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