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리다. 의료공급 부족이 정말 심각한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언론은 응급실 포화문제를 실시간 보도하고 있고, 정부는 문제는 맞지만 의료붕괴 같은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국힘과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입장을 얘기한다. 개별 정치인들도 한말씀씩 하고 있다. 한동훈은 25년 증원 논의에 대한 문을 열며 윤석열 정부와 대치하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대통령이 사과하라고 하고, 안철수, 유승민 등 개별 정치인도 25년도 증원 철회하라고 기자회견을 한다. 홍준표는 안철수에게 혼란을 부채질한다고 SNS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나서서 다른 안건을 미루고 의료대란 관련 국회절차를 우선 진행한다고 한다. 모두가 한말씀씩 하고 싶은 이슈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나는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사회구성원이 대화하고 협상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건도 마찬가지인데, 대화와 협상이 문제 해결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의사단체는 그런 태도가 없다. 여당 국민의힘당 당대표인 한동훈 의원이 25년 증원 철회 가능성도 열어놓고 대화에 들어오라고 제안하였음에도, 의협은 대화 전에 조건을 들어줘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대화 전에 모든 요구사항을 들어줄 거면 대화가 필요 없다. 내 의문은 의협은 어떤 상태이길래 마치 독립투사가 된 듯한 당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다.
나는 의사집단에 대해 모른다. 언론에 비춰진 모습에서 받은 느낌은 이러하다. 먼저, 공식적인 대표단체는 의협이지만, 의협이 실제로는 의사들을 대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의대증원의 핵심 이해관계자는 전공의와 의대생인데, 의협은 전공의와 의대생을 포괄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고정적인 소통채널도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전공의 문제 뿐 아니라, 의협은 교수, 전문의, 개원의 등 다양한 목소리를 소화해내지 못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한 목소리로 만들어본 경험도 없는 듯 하다. 지도부 따로, 구성원 따로인 모래성 집단인 것 같다.
전공의협의회도 사정이 비슷해 보인다. 박단 대표는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수차례 연기되는 와중에 단독 출마하여 23.8월 당선되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대표성이 있다. 하지만 윤대통령과 만남이 성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전공의 내부에서 박단 대표 탄핵이 거론되는 등 기반이 취약하다. 문제가 대표성 부재로 드러나지만 핵심 문제는 전공의협의회 조직 자체에 있어 보인다. 전공의협의회도 의협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취합해낼 역량이 없는 것 같다. 자발적으로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는 데 전공의들이 어떤 의견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극단적인 세력의 목소리만 크게 울리고 있다. 악마화에 허탈해져 버린, 체념한 사람들이 전공의 단체를 대부분 차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궁금한 부분은 대화의 창을 아무리 활짝 열어도 전공의집단, 의사집단이 대화의 장에 들어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건지다. 집단으로서 대화를 하려면 집단 구성원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건 아닌지, 구성원간 소통채널이 없는 건 아닌지, 그래서 지도부는 구성원 누구에게도 절대적으로 해가 될 수 없는 극단적이고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건 아닐까? 구성원들 간의 논의도 미약하고 구성원과 지도부의 연결도 약해서 지도부는 가장 극단적이고 당위적인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태는 아닐지 불안하다.
집단적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조직역량은 갑자기 길러지지 않는다. 원래 매우 갖추기 어려운 역량이다. 정치권이 영원히 시끄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이고, 집단적 의사조율 방식을 효율 중심으로 단순화시킨 관료제가 시장과 공조직에서 조직운영의 기본체계로 자리잡은 이유이다.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체득되는 역량이고 단기간에 갖추기는 어렵다.
어느 집단과 대화를 해야하는데, 그 집단이 대화능력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의료대란이 이런 상황이라면 대화하자고 읍소하는 것이 무의미할 것 같다. 그리고 전공의 복귀라는 단기적 목표 달성만을 위해서는, 정부는 의사단체 지도부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극단세력을 엄벌하고, 대부분의 전공의에게는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일방적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게 지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악화일로이지만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의사집단이 모래성이라면 오히려, 전공의 대표가 길을 바꿀 수 있는 방향키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실질적 대표성이 약하더라도 대표자는 대표자이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위이다. 대화 참여해야 할 것 같은데 눈치 보고 있다면, 눈치를 꺼버리고 리더십을 발휘할 적절한 타이밍이다. 그게 리더십이다. 많은 전공의가 대표의 생각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대표의 결정이 대화 거절이라면, 점점 더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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