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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8.29. 탄소중립기본법(구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위헌 확인

 
오늘 헌법재판소에서 세기의 판결을 했다. 탄소중립기본법이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데 충분하지 못해 헌법상 환경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했다. 탄소중립기본법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아무런 탄소감축 목표를 지정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정부가 해태하고 있다는 취지이다. 특히 기후위기의 위험에 크게 노출된 미래세대가 투표권 등 민주적 참여의 권리가 배제되어 있다고 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현 정치체제의 구조가 미래세대의 기본권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고(그렇다고 현 정치권의 무대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절대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헌재가 정치적 영역에 개입할 정당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2026. 2. 28. 까지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 
 

[ 판결 이유 :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 부재 ]  

○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는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 비율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의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는바, ....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으므로,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으로,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할 것이다.
 
○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감축경로를 계획하는 것은 현재의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제한하게 되는 것임에도, 위험상황으로서의 기후위기의 성격상 미래의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감축목표를 정하고 계속 진전시켜야 한다. 구체적인 감축수단에 관해서는 감축목표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매우 다양하게 대립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감축경로를 계획하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므로, 2031년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도 그 대강의 내용은 ‘법률’에 직접 규정되어야 한다.
정기적인 선거를 통하여 구성되는 입법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대응책을 추구해야 할 기후위기와 같은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될 구조적 위험이 있고, 특히 이른바 미래세대는 기후위기의 영향에 더 크게 노출될 것임에도 현재의 민주적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약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대하여 입법자에게는 더욱 구체적인 입법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한 시민으로서 헌재의 결정을 너무나 환영한다. 관습헌법상 서울이 수도라며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을 할 때부터 헌재의 존재에 관심이 있었다.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정치적 결정사항을 뒤집는 것을 보고 온당치 않은 권력을 갖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런 권력기관이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판결 이유에서도 투표로 선출된 정당한 입법자를 입법 의무를 해태할 구조적 위험이 있는 자로 언급하며, 입법자의 의무 영역을 축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번 판결은 진심으로 헌재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현재 정치권이 장기적인 시야가 없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는 건 안타깝지만 사실이고, 기후위기 상황은 이미 위험하고 해결이 시급한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탄소중립법 중 2030년까지 40% 감축하기로 한 조항에 대해서는 합헌으로 판결한 점이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합헌의 이유가 40%라는 수치가 기본권 보호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기본권 보호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결 이유를 평이한 용어로 번역해 보면, "어떤 특정한 추정방식과 평가요소들을 채택해야 맞는건지 모르겠어~"로 풀어 쓸 수 있다. 40%가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적절한 수치인지 헌재가 무슨 방법으로, 무슨 용기로 판단할 것인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앞으로 NDC 논의에서 40%를 신성하게 모셔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40%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는 열려 있다. 한편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목표 부재는 정부의 근시안적 접근을 보여주고, 2030년의 목표도 그런 접근에 기반한, 부족한 목표일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 판결 이유 :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 관련 ]  

○ 입법자 또는 그로부터 위임받은 집행자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한 ‘특정 연도’의 감축목표 비율에 관한 ‘구체적 수치’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원칙적으로 입법자 또는 그로부터 위임받은 집행자의 권한과 책임을 전제로 하는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적용하면서, 어떤 특정한 추정 방식과 평가 요소들을 채택하여 그 결과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기여해야 할 우리나라의 몫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정하여 판단하기는 어렵다.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율의 수치만으로는,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사실 NDC와 관련된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갈등전선을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유지되어 오던 정부-산업계-시민단체의 좁은 전선으로는 시민단체 측이 불리하다. 여기서 헌재가 불씨를 살렸고, 이 이슈를 전 국민에게 호소할 만한 동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전선을 크게 확대해, 엘리트적 결정이 국민적 결정에 가까워질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2026년 2월이라는 시한도 기후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의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본다. 임기가 2027년 5월인 윤석열 정권의 레임덕이 일찍이 시작되었고, 직전 총선에서 그나마 기후에 귀기울이는 정당이 선전한 것도 2026년 2월의 결과에는 나쁘지 않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