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좋은 공공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한 정치체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문장이 적혀 있진 않다)
이 질문에 대해 대답으로 저자는 정당이 크고 강해야 하고, 또 그러한 정당이 두 개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정당이 크다는 것은 국민 전체 구성을 대표할 만큼 민주적 기반이 넓어야 하고, 그에 따라 정책도 어느 한 집단의 이익에 치우침 없이 종합적이 균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이 강하다는 것은 정당의 정책 의견이 개별 의원의 잡음 없이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저자는 정치체제에 비례대표제, 대통령 예비선거 등 직접 민주적 요소를 강화하는 것을 반대한다. 포퓰리즘을 심화시키고, 극단적 이념 세력이 득세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비례대표제가 좋은 공공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비례대표제가 강화될 경우 한 정당이 특정 집단이나 가치만을 대표하기 쉽고, 그에 따라 정당 차원에서 전체 사회의 이익 비용을 형량한 종합적인 정책을 만들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비례대표가 강화될 경우 정당의 수가 많아지고 정책 구현을 위해서는 정당간 협의가 필요해진다. 이때 각 정당에서 만든 편향된 정책이 정당간 정책 거래를 통해 최종적 정책이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에 초래되는 외부비용이 무시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용자 정당과 노동자 정당이 협의를 통해 정규직 고용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정책이 만들어질 때, 상품가격 상승이나 비정규직과의 차별 문제, 프리랜서 소외 문제 같은 것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더불어서, 공공정책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이다. 최종 정책이 여러 정당이 서로 협상하는 과정에서 정책을 주고받은 결과이기 때문에 누구의 책임인지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법적 제도로서 선거제도 외에도 약한 정당을 만드는 정당 내 의사결정의 분권화에도 반대한다. 예를 들자면 당에서 지역구 의원이나 대통령 후보를 공천하거나 지명할 때 지역주민이나 일반 당원/시민의 투표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역구 의원은 독자적인 권력 기반을 갖게 되고, 지역의 이익에 집중하게 되며, 정당의 전체적인 정책방향에 반대하거나 지도부와의 협상을 통해 특정 정책의 방향을 뒤틀 수 있다.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일반 시민의 선거를 통해 선정하는 경우, 소수의 적극적인 세력, 예를 들면 극우세력의 의지가 과다반영될 수 있다.
저자는 최근 전세계적인 극우세력의 약진은 비례대표제에 힘입었고, 트럼프의 당선, 당내 정책 거래에 따른 오바마 케어의 핵심 규정 무력화는 정당 내 분권화에 기인한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민주당과 국힘당의 양당제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최근 비례대표제, 당원 직접투표 등 직접 민주적 요소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준연동형이라는 비례대표제 개정이 있었고, 정치 경험 없는 유명인 공천이 늘어나고 있다.
비례대표제의 경우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능 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norm 이 되고 기형적 형태로 운영되면서 사실상 비례대표제도 아닌 것처럼 운영되고 있다. 거대 양당에 표가 더 쏠렸다. 그럼에도 비례대표제 강화가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완전한 위성정당은 아닌데, 자신만의 색깔로 많은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이 검찰개혁 외에 다른 어떠한 가치도 대변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표를 긁어모은 걸 보면, 저자가 우려하는 극우세력의 득세도 비례대표제와 결합할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것 같고, 저자의 비례대표제에 대한 우려도 공감이 간다. 위성정당 꼼수가 없었고, 유럽 만큼의 비례대표성이 강화된 상태였다면, 조국혁신당은 오십석 이상을 획득했을 것이다.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인종간 종교간 계급간 혐오가 증가하고, 사회의 유대감이 실종되고 자기이익 추구가 곧 선이거나 적어도 용인해야 한다는 개념이 전 사회에 정착했다. 사회가 분절되고, 각 그룹은 서로 배타적인 가치와 정책을 추구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이 비례대표제 등 아래로 분권화되고 제도에 직접 민주제 요소가 결합될 때 극단적이고 적극적인 세력이 과다대표되며 나쁜 정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뽑히던 유럽이 최근 극우 세력이 약진하는 것은 저출산, 이민자 유입, 소득 불평등 심화되는 사회 인구구조가 비례대표와 맞물렸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크고 강한 두 정당이 있고 지역구 선거제를 취하는 경우에는 제3당이 살아남기 힘든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소수자의 가치들은 지역구 선거에서 의제가 되지 못한다. 지역 단위에서는 소수자 권리와 정의에 대해서 토의하거나 울부짖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다. 아무래도 부동산이나 교육이 대부분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이다. 양당은 비슷한 정책을 제시하며, 통상은 상황이 언제나 좋지 않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집권세력 심판을 위한 투표를 하게 되며, 따라서 당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면서 조금씩 다르거나 개선된 정책을 낸다. 제3당의 표는 권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효능감을 느끼지 못한 투표자들은 그 당을 떠나 양당에 안착한다. 이런 구도에서 소수자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나? 저자는 소수자가 스윙 보터로 기능함에 따라 양 당에서 집권을 위해 소수자 포섭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소수자 정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저자가 양당제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책에서 말하는 크고 강한 두 정당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제3당인 녹색당이나 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소멸하고 말았다. 제3당이 지역구에서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민주당과 국힘당은 번갈아가며 서로 집권하고 심판한다. 정책은 비슷비슷하고, 혁신적이지도 극단적이지도 않다. 급식충, 맘충, 틀딱, 꼰대, MZ 등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느라 바쁘고, 소득 불평등과 심화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사회가 모래알처럼 쪼개지지 않고 두 개로 갈무리되어 있는 느낌은 있다. 하지만 아무도 정치가 잘 흘러가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치가 우리와 괴리되었다고 느낀다. 사회는 분절적으로 나눠져 있는데,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정당에게, 어쩌면 개인은 그런 정당에게 소속감이나 연결된 느낌을 받지 못할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건 사회인구구조와 자본권력의 공고화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정치체제도 이것에 고삐를 채울 역량이 부족한 듯 하다. 유럽이 사회 대부분이 중산층 노동자이고, 서로 유대감이 있고, 사용자와도 서로 윈윈하는 관계를 유지하던 때에는 비례대표제도 잘 굴러갔던 듯 하다. 양당제도 그랬던 듯 하다. 좋을 때는 잘 굴러갔던 듯 하다. 사회인구구조가 변하자 그 변한 구조를 기반으로 정치도 삐걱대는 것 같다. 비례대표제는 정치를 혼란한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들어 혼란한 정치가 만들어지고, 양당제는 혼란한 사회와 떨어져서 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하지만 사회인구구조, 자본권력 공고화가 주된 원인인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에 모든 문제를 돌려놓고 정치에 답이 없다고 정치 혐오의 길로 빠진다면, 악순환의 시작이다. 정치가 사회를 개선하지 못하고, 그러한 사회는 정치를 더욱 악화시킨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악순환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줄 가능성이 있는 정치체제는 무엇일까? 비례대표와 양당제 중 양자 택일하자고 하면 비례대표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양당제는 혁신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양당제는 정치적 중간지대에 있는 많은 사람의 욕구를 대변하게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 체제는 중간적 욕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겠지만, 이 사회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역량은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지적처럼 비례대표제는 가치 중심으로 사회가 분절되거나 극단 세력의 이해가 크게 반영될 위험이 있다. 지금은 한국 사회가 소멸로 향하는 절체 절명의 시기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비례대표제로의 방향성을 갖고 혁신의 가능성을 품고 가되, 그 방향성 하에서 위험을 어떻게 줄일지, 어떻게 사회통합을 강화하고 극단 세력의 이해를 여과할 것인지 숙고해야 할 것 같다.
정당 내 분권화에 대한 반대 입장은 저자와 같다. 정당의 존재 자체가 정치적 목소리를 일관성 있게 모아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당이 존재하지 않고 개별 의원이 모두 모여 토론하고 표결하고 결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정당의 존재로 인해 특수 지역, 업권, 세력의 이익, 개별 의원들의 목소리가 일반화된 국민의 이익으로 전환되는 것이고, 그게 정당의 존재 의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러 개의 당, 여러 개의 일관성 있는 목소리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통합되면서 그 사회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정당에서 외부로 정치적 목소리가 표출될 때, 각 개별 의원이 입장이 다르면 정당의 존재 의의가 약화된다. 따라서 정당의 의사결정에는 규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정당 내 분권화 반대 입장은 의사결정 절차가 권위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정당의 규율은 그 결정의 결과에 모든 당원/의원이 온전히 복속되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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