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현대 소위 정당이 운영되는 민주국가에서 선거제도의 작동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특히 ’어떻게 how 선거제도가 작동하는가?‘를 설명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규범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무엇이 what 민주주의인가? 또는 민주주의는 왜 why 그런 모습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책의 세계관은 단순 명료하다. 세상에는 유권자와 정당이 있다. 유권자는 정당에 대한 정보를 얻어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투표를 한다. 정당은 공공권력의 확보 또는 재집권을 위해 정책을 추진하고 홍보를 한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전제로 해서 유권자의 정책 선호 분포와 지역구제 비례대표제 등 정당 제도에 따라 정치 및 정책지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모습을 그려낸다. 경제이론으로 정치를 본다고 의미는 복잡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미시경제학의 접근법을 쓰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별 주체들의 행동 원칙을 전제로 거시적인 정치구조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책의 결론을 간단히 쓰자면 이렇다. 대부분의 유권자에게 투표를 통해 예상되는 이익보다 정당이나 정책에 관한 정보를 얻고 판단하는 데 드는 비용이 더 크다. 먼저 정보를 얻고 판단하는 건 생각보다 상당한 시간이 든다. 특히 정당정보 같이 재미 없는 정보의 경우 전달하는 것부터 큰 비용이 든다. 어떤 경우 전혀 가닿을 방법이 없는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정보가 전달된다고 해도 정당이 취하는 정책 입장이 명확하지 않거나 그것을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책이 아무리 명확해도 미래에 나타날 실제 효과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고 여러 정책의 효과도 혼재되어, 예상이익을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책비교를 통해 정당 간 우선순위를 계산해낸다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투표행태를 고려해 내 표가 유효할 가능성, 사표가 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녹색정의당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민주당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유권자는 언론이나 생활집단에서의 대화 등에서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정보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인터넷 붐 초기에는 정보기술이 발달하고 소통비용이 감소함에 따라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널리즘의 공간은 더욱 작아지고, 검열 없는 자유로운 컨텐츠 생산이 늘어났으며, 자기 선호에 맞는 정보만 계속 전달되는 식으로 정보 시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서 이제는 유권자의 선호를 고정적으로 보기가 어렵고, 컨텐츠 생산자가 장기간에 걸쳐 유권자의 정치적 선호를 형성시키는 권력을 갖게 된 것 같다. 컨텐츠의 생산은 상당히 랜덤한데, 그들도 생존해야 하므로 통상 혐오 등 말초적인 재미를 자극하는 요소를 띈다. 내용에 있어 민주적인 통제가 되지 않고, 극단적인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정치지형에서 각 집단 간에 거대한 골짜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선거제도의 역학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더 커진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5) | 2024.09.01 |
---|---|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0) | 2024.08.25 |
절반의 인민주권 (0) | 2024.08.19 |
모두를 위한 녹색정치 (0) | 2024.07.15 |
책임 정당 :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0) | 2024.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