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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저자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가치로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으로 나누고,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데 어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지 이야기한다. 각 국가의 사회경제 상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시도에 대한 저자의 지식은 정말 방대하다.

저자는 각 가치로 나아가는 길이 험난함을 설명한다. 험난함의 한 측면을 보자면, 개인의 이기심을 비도덕적인 것으로서 억제되고 비판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진 않으며, 부인할 수 없는 현실변수로 전제한다. 이러한 이기심은 공공정책의 성공과 배치될 때가 많은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너무 옥죄지도 풀어주지도 않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함을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의 해결에는 반드시 정치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함을, 규범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회과학적 이유로 정치가 관여하는 경우에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방식이 독특한데, 성공적인 사례를 설명하면서도, 어두운 측면을 이야기하며 반대방향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러면서 다시 그 사례의 밝은 측면을 이야기하며 다른 사례로 넘어간다. 그래서 읽다보면 “현실은 복잡하고 답이 없다”는 느낌을 갖기 쉽다. 저자는 상황을 해상도 높은 상태 그대로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더더욱 개선의 방향을 찾아내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각 장 말미에 개선방향에 대한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툭 던져놓는데, 그 분량이 아주 짧아서 나는 이것이 저자가 스스로 지나친 회의감을 극복하기 위해, 혹은 편집자의 강요로 억지로 집어넣어 놓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정치의 실패를 사실로 전제한,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가 아닌가 싶다.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해결방안 중에 심히 공감을 하는 부분이 있다. 의료비 세액공제 처럼 고소득자가 더 이득을 보고 가시성이 떨어지는 정책보다는, 의료비에 대한 보편적인 지원처럼 가시성과 의미가 뚜렷한 정책이 좋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정책은 그 의미를 사회구성원이 공감해야 하고, 일정 수준의 연대감(고소득자가 세금이 아까워서 적극 탈세를 하지는 않는 수준)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스웨덴의 보편복지는 정체를 숨기지 않고 그 존재를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성공을 거뒀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유권자의 현재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방향이 아니라, 연대의 마음을 직접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가자는 것이다. 연대라는 가치는 교묘한 기술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소제-정치는 어떻게 성공하는가)에는 새기고 싶은 문장이 많다.

  • 우리가 정치 없이도 잘살 수 있는 척할 때 정치는 실패한다
  • 기성 정치인을 몰아내고 기존 제도를 뒤엎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선동가의 외침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면서도 혁명의 이면에 정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의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 정치의 불확실한 약속은 인류가 직면하는 뿌리 깊고 고질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기술주의자와 포퓰리스트의 거짓 약속보다는 더 낫다.
  • 우리는 언제나 의견 차이를 보일 것이다. 바로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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