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모습
행정부 중앙부처의 인사관리를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나는 구체적 현실과 닿아 있고 정책을 발화하는 "과"의 역량이 크게 훼손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과"의 역량을 정상화하고 유지하는 데 인사관리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가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과의 구성원들이 매년 모두 바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장이 3년 이상 같은 과에서 근무하면 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과장급 이하는 담당 영역의 크고 작은 이슈를 접하고 정책을 발화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그 영역과 일체화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근무기간을 늘림으로써 지식이나 역량을 축적하는 측면도 있지만, 책임성을 확보하는 의미가 더 크다. 나는 정책이 담당 과장의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조직 내외부에서 정책의 책임자가 명확해지고, 과장 스스로의 자부심도 높아질 것이다.
3년이면 어떤 과를 다음 과를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과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현재는 짧은 근무 주기로 인해 모든 과의 역량이 매우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히 뒤쳐지는 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3년쯤 근무하면 과가 서로 비교될 수 있으며, 훌륭한 과와 뒤쳐지는 과가 드러날 것이다. 과장 개인의 역량 차이도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확장 , 분할해야 하는 과와 축소할 과가 보이고 조직의 재정비가 필요해질 것이다.
과장보다 중요성은 덜하다고 생각하지만, 과장의 손발이 되는 사무관도 3년 이상 같은 과에서 근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무관 시절에 1년 마다 자리를 옮기면서, 능력 부족으로 못다한 일들에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보직이동을 할 때 쯤이면 1년간 내가 한 일에서 부족했던 점이 눈에 보였고, 2년 차에는 제대로 일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자리를 옮겨야 했고, 후임자에게는 책임 문제로 무언가를 제안하기가 부담스러웠으며, 내가 당면한 새로운 과제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바빴다. 아마도 새로운 담당자는 내가 1년차때 했던 고민을 반복할 것이다. 내가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책 업무의 인력 수준을 충분히 끌어올려리려면 3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과장부터 사무관까지 과의 모든 인원이 한번에 이동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기재부에서는 과장이 1~2개월 먼저 이동하고 이후에 사무관이 이동했는데, 결국 1~2개월 안에 과의 모든 인원이 교체되었다. 이렇게 되면 보직이동 시기에 과의 역량이 지나치게 급격하게 저하된다. 그래서 각 인원의 최소 근무기간을 충족하면서도, 인원별로 보직이동 시기를 나누어 순차적 보직이동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럼 과를 이루는 인원의 절반 이상이 1~2년 이상의 경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 내의 한 사무관이 하나의 세부영역을 온전히 무한하게 담당하기보다는 주-부 책임자를 두는 등 공동 관여하는 형식이 되면, 인사이동에 따른 공백을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과의 업무역량이 높아져, 담당영역을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행정부에 입사한 사람들은 유능하기 때문에, 아마 한 과에서 2년쯤 지나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고 지루함이 몰려올 것이다. 3년차에는 자동판매기처럼 누르면 대답이 나올 것이고, 사람이 그 영역의 정책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과장, 사무관이 3년쯤 같은 자리에 있으면 외부로부터 더 많은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그간 바쁨을 이유로 사무관이나 과장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작은 이슈도 들여다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우선순위가 낮아 사무관 선에서 잘렸던 것도 과장에게까지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국장급 이상은 지금과 같이 정치적 이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또 세부적인 하나의 과제에 시간을 들여 깊이 파고들기 보다는 다양한 일을 총괄하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관리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담당한 영역의 구체적인 문제가 달라지더라도 국장급의 추상적인 관리 업무는 공통적인 부분이 많고, 또 보직이동으로 인해 그 역량이 크게 저하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사 운영은 과장 이하 보직이동의 복잡성을 매우 증가시킬 것이다. 개인별로는 최소 근무기간을 유지하면서, 한 번 인사이동을 할 때 일부 과의 일부 인원만을 대상으로 셔플링을 하는 방식이다. 행정부 외부에서 인사이동의 영향을 거의 느끼지 못하도록 구상하다 보니, 내부적으로는 거의 상시적으로 소규모 인사이동이 있어야 한다.
이 방식은 복잡성 때문에 지금처럼 각 행정부처 중앙 통제형 인사관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사부서는 승진 및 국장급 인사관리에 집중하고, 과장급 이하는 이동 원칙을 수립하고 감독하는 수준에 그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국장이나 과장이 인원별로 인사시기에 맞춰 과장이나 사무관을 자율적 경쟁적으로 모집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위처럼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상적인 모습을 몰라서 지금까지 순환보직이 계속되어 왔던 것은 아니다. 순환보직이 계속될 환경이 매우 견고하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결이 꼭 필요한 문제는 지금의 처참한 상태에서 이상적인 모습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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