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행정부 중앙부처 공무원 순환보직 문제 - 순환보직의 모습

 

순환보직이란

 순환보직이란 보직을 순환한다는 의미이다. 공무원 조직 인사관리의 근간은 순환보직이다. 순환보직은 관료제의 인사관리 방안의 하나로 도입되었다. 관료제는 보통 공무원 조직을 일컫지만, 엄밀히 공무원 조직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고, 근대의 대규모 조직은 사실상 관료제로 볼 수 있다. 관료제는 효율성과 합리성에 중심을 둔 규칙, 절차, 조직 구조화 등을 말하는데, 이러한 관료제적 특징은 조직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조직의 성공 방정식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관료제적 특징 없이는 대규모 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관료제 조직에서의 인사관리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하나가 직위분류제이고 다른 하나가 계급제이다. 직위분류제는 특정 직위의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찾아 그 직무에 배치“하는 방식이고, 계급제는 “계급을 나누고 높은 계급에 큰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직무 적합도에 따라 직무를 부여하는 직위분류제는 그 정의에서부터 순환보직과 충돌한다. 순환보직은 직무 적합도에 무관하게 직무를 주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급제에서만 순환보직이 관찰되는데, 특정 계급 내에서 여러 보직을 거치게 한 후 상위 계급으로 승진시키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세계적으로 공무원 조직은 계급제로 시작하였고, 직위분류제 요소를 도입해 왔다.
 
 우리나라도 계급제가 원칙이고 직위분류제 요소를 도입하려고 시도해 왔다. 하지만 소수의 기술적 분야에 제한적으로 직위분류제의 모습을 띄고, 일반적으로 계급제이다. 이 계급제를 기반으로 순환보직이 인사방식과 조직문화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한편, 미국은 대표적으로 전면적으로 직위분류제 중심으로 운영하는 국가이다.
 
 

중앙부처 공무원의 순환보직 - Z자형
 
 우리나라 순환보직의 모습은 Z자형이다. 그래서 엄밀하게는 순환하고 있지는 않다. 계급제의 일반적인 운영방식은 하위 직급의 여러 보직을 거치고 나서 상위 직급으로 올라가는 것이며, 우리나라의 Z자형 순환보직도 계급제의 일반적 운영방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행정부 중앙부처 공무원 순환보직의 특징은 같은 직급 내에서 암묵적인 위계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직급에서 1순위부터 차례대로 순위가 매겨져 있다. 그리고 같은 직급 내에서 후순위에서 선순위로 보직 이동을 한다. “과” 중 1순위는 “총괄”, “종합”, “정책” 같은 이름을 달고 있다. 예를 들면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1순위 과는 조세정책과이다. 이러한 1순위 과는 다른 모든 과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상위조직인 ”국장“이나 ”실장“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곤 한다. 2순위부터는 담당하는 정책의 부처 내외부 정치적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큰 과이고, 구체적인 순위는 유동적이지만 과거 1순위로 이동한 과가 어디인지 등 과거 이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Z자형 순환보직의 이동은 나선형 탑에서 나선을 따라 일렬로 올라가는 형태에 가깝다. Z자형의 끝을 잡아 들어올리면 I자가 된다. 이 이동에는 전문성, 성과 등 다른 요소는 미미한 영향을 미친다. 가장 큰 결정요소는 아래에서 위로 일렬로 올라가는 "흐름" 그 자체다. 좀처럼 이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1순위에서 하위 순위로 이동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하위 순위에서 착착 올라와 1순위에 도달하면, 그 다음은 정해져 있다. 다음 직급의 후순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Z자형 이동이 완성된다. 
 
 Z자형 이동이 전체적인 틀이고, 예외적인 사건들이 흔들림을 만든다. 해외파견, 유학, 휴직, 복직, 퇴직, 특진, 좌천 등이 그러한 사건이다. 각 사건의 유형에 따라 어떤 범위로 이동할지에도 암묵적인 룰이 있어서, 이러한 사건으로 유입, 유출되는 인원이 전체 배열 중 어디께에 위치할지는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Z자형 이동의 특징에 따라, 적은 인원의 이동이 전체 직원의 이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Z자형 이동에서 중간에 한 사람이라도 끼어들면 아랫 순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동이 정체되고, 반대로 한사람이 빠지면 모든 사람이 이동한다. 공무원 인사를 보면 어느날 갑자기 과장 국장이 촤라락 하고 한클릭씩 이동하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보통 고위 공무원 중 누군가가 퇴직을 했거나 외부의 좋은 자리로 영전을 했기 때문이다. Z자형 탑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빠져나가니, 탑의 아래쪽에 기거하던 직원들 전체가 위로 한칸씩 올라가게 된다. 반대로 최근에 사회분위기 변화로 고위공무원에 외부자리를 챙겨주기가 힘들어지면서 퇴직 후 살길을 찾느라 퇴직을 미루는 최고위 공무원들이 늘어났는데, 이로 인한 적체는 아래 직급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Z자형 보직이동 체계에서 대규모 보직이동 또는 비이동의 주된 원인은 누군가가 퇴직했거나 잔류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조직의 효율성이나 일의 성과 제고 같은 동기와는 관련성이 매우 낮다.
 
 사무관은 직업이 사무관이라고 할 정도로 10여년 이상 동일 직급 근무가 계속되고, 부처내 인원비중이 높다. 그러다보니 일렬 이동의 모습이 약하다. 자리가 워낙 많아서 전체 자리에 순위를 매기기가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Z자형 보직이동의 복합 축소판 모습이다. 각 과에는 “주무”가 있고, 그 외에도 업무를 기준으로 보직을 나눈 뒤 보직별로 순위가 있다. 1계를 주무, 그 뒤로 2계, 3계, 4계 이렇게 나뉜다. 보직이동시 4계 사무관은 같은 과의 3계나 다른과의 3계 또는 4계로 이동한다. 단계를 건너뛰고 1계로 이동하는 일은 없다. 1계 사무관은 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과의 1계로 이동한다. 1위 과의 “주무”로서 과 또는 국의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는 서기관으로 가장 먼저 승진하는 자리다.  
 
 하지만 계를 세부계급으로 본다면, 같은 계 직급의 인원이 많다. 같은 계 직급이라도 과가 다른 경우 서로 순위가 분명하지 않고, 과 내에서 계 직급이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일렬 이동의 모습이 약하다. 그래서 한두 사무관의 이동이 사무관 직급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고, 운영방식에 따라 영향을 거의 없앨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무관급도 순환보직을 원칙으로 운용하며 임의의 규칙에 따라 1~2년 주기로 전체 사무관을 줄줄이 이동시킨다.